‘합의금 몫’ 빠진 차보험…향후치료비 개편이 바꾼 셈법
자동차 사고 합의금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던 ‘향후치료비’가 경상환자를 대상으로 원칙적 폐지 수순에 돌입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개정된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맞춰 지난 10월 25일부터 책임개시가 시작된 자동차보험 계약부터 경상환자에 대한 향후치료비 지급 기준이 본격 개편됐다. 가해 차량 보험의 계약 개시일에 따라 합의금 산출 방식이 크게 달라지면서 가입자와 사고 피해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이번 조치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에 규정된 상해등급 12~14급에 해당하는 경상환자에게 적용된다. 척추 염좌, 단순 타박상, 사지 관절 염좌 등이 여기에 포함되며 골절이나 내부 장기 손상 등을 입은 1~11급 중상환자는 이번 제외 대상에서 빠졌다. 다만 임산부와 7세 이하 영유아는 경상환자 등급에 해당하더라도 약자 보호 원칙에 따라 심사 기준 적용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
그동안 자동차 사고 합의금은 통상 실제 치료비와 위자료, 휴업손해액에 더해 사고 조기 종결을 명목으로 100만~200만 원 안팎의 향후치료비가 관행처럼 얹어지는 구조였다. 약관상 뚜렷한 산정 근거가 없었으나 분쟁을 빠르게 마무리하려는 보험사와 환자 간 묵인 아래 지급돼 왔다. 개정 기준이 적용되는 계약부터는 12~14급 경상환자에게 장래 치료 명목의 합의금을 미리 주지 않고 치료 종결 시점까지 실제 든 병원비만 실비 형태로 보장한다.
제도 적용 시점을 판단할 때는 사고 발생일과 가해 차량의 보험 개시일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사고일로부터 8주가 넘는 장기 치료 필요성을 따지는 ‘8주 심사 룰’은 지난 9월 10일 이후 발생한 사고부터 적용됐다. 반면 향후치료비 지급을 원칙적으로 막는 약관 기준은 9월 10일 이후 새로 체결되거나 갱신돼 보험기간이 10월 25일 이후 시작되는 계약 건부터 순차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합의금 산출 체계가 뒤바뀐 배경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동차보험 적자가 자리 잡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자동차보험 손익 통계에 따르면 2024년 97억 원이던 영업적자는 2025년 7,080억 원 적자로 대폭 늘었다. 2026년 1~5월 누적으로도 1,637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손해율이 가파르게 상승해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급된 향후치료비의 절대다수가 경미 손상에 쏠렸다는 통계도 개편을 앞당겼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2024년 자동차보험 진료 및 합의금 지급 통계를 보면 전체 향후치료비 총액 1조 6,800억 원 가운데 12~14급 경상환자에게 지급된 액수가 1조 4,100억 원으로 83.9%를 차지했다. 감사원 역시 2024년 4~5월 진행된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 대상 감사에서 객관적 기준 없는 향후치료비 지급 관행을 정비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향후치료비가 막히면서 8주 이상 치료를 받으려는 경상환자의 입증 절차도 까다로워졌다. 환자가 사고일 다음 날부터 기산해 8주를 초과하는 치료를 받으려면 사고일로부터 7주 이내에 보험사에 진단서와 진료기록부, 영상자료, 개인정보동의서를 내야 한다. 기한 내 서류를 내지 못하면 치료비 지급 보증이 일시 중단될 수 있어 기한 엄수가 필수가 됐다.
제출된 서류는 보험사를 거쳐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으로 즉시 넘겨져 치료 필요성을 심의받는다. 진흥원은 전문 의료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접수일로부터 7일 이내에 계속 치료 인정 여부를 통보한다. 진단서 발급비와 자문 수수료는 보험사가 전액 부담하며, 결과에 불복할 경우 통보를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국토교통부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으로 정당한 치료권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8주 심사 기준에 대한 오해로 치료 자체가 강제로 중단된다고 여기는 환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의료계는 객관적인 임상 소견과 영상 자료를 통해 치료 지속 타당성을 인정받으면 적정 치료비를 계속 지원받을 수 있어 과잉 진료와 진정 환자의 정당한 진료는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관행처럼 통용되던 조기 합의금 셈법은 사라지고 실제 치료 기간과 손해액을 중심으로 보상 체계가 굳어질 전망이다. 피해자는 본인의 치료 경과에 맞춰 실질적인 회복에 집중해야 하며, 보험 개시일과 7주 제출 기한 등 세부적인 일정을 미리 확인해 불필요한 보증 중단 피해를 예방하는 주의가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