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압박에 화장품으로 눈 돌린 제약사들…’K-뷰티'가 새 먹거리로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과 치열해진 제네릭 경쟁으로 국내 제약사들의 경영 여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장품 사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약품 사업에서 쌓은 연구개발(R&D) 기술과 브랜드 신뢰도를 앞세워 화장품 시장에 새로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을 키우는 제약사가 늘고 있다.
■ 일동제약·안국약품, 뷰티 시장 신규 진출
일동제약그룹은 27일 나인앤컴퍼니와 함께 합작법인 '아이디나인'을 세우고 뷰티헬스케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위주였던 사업 구조를 화장품 등 뷰티헬스케어로 넓혀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일동제약그룹은 자체 개발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프로바이오틱스 화장품 원료 '세라글로우(Cera-Glow)'를 활용해 피부 장벽 관리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내년부터 고기능성 더마 스킨케어 제품을 차례로 내놓는다.
안국약품도 최근 메디컬에스테틱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의약품 사업에서 다져온 기술력과 영업망을 바탕으로 피부미용 시장까지 영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 배경은 약가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
제약사들이 화장품으로 눈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약가인하로 인한 수익성 악화 우려다.
정부가 제네릭 약가 산정 비율을 낮추고, 같은 성분 의약품이 여러 개 등재되면 추가로 약가를 깎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국내 제약사의 핵심 수익원인 제네릭 사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제네릭은 같은 성분끼리 차별화가 어려운데 가격까지 낮아지면서, 여러 품목을 많이 파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가 됐다.
여기에 원료와 인건비 등 생산비 상승, 신약 개발에 드는 R&D 비용 부담까지 겹쳤다. 특히 매출 대부분을 국내 처방약 시장에 의존하는 중견 제약사일수록 약가인하의 타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 가격 규제 없는 화장품, 기존 사업과 연계성도 높아
화장품은 의약품과 달리 건강보험 약가 규제를 받지 않는다. 기업이 브랜드 경쟁력과 제품 차별화에 따라 판매 가격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제약사가 가진 피부 관련 연구 기술과 의학적 전문성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도 크다.
다만 화장품 사업은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마케팅과 유통망을 갖추는 데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단기간에 의약품 사업의 수익 감소를 메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 동국·동아·대웅, 해외시장 공략 속도
이미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는 제약사들은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해외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 주자는 동국제약이다. 동국제약은 사명을 ‘DK센텔리안'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며 화장품 중심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화장품 수출액은 2024년 163억 원에서 지난해 300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1200억~14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상처치료제 '마데카솔' 연구 자산을 활용한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의 성장은 일반약·전문약 중심이던 동국제약의 사업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올해 연매출 1조 원 돌파를 노리는 동국제약에서 화장품은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동아제약은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파티온'의 제품군과 해외 유통망을 넓히고 있다. 최근 피부장벽 관리 제품 '딥 베리어 프로' 5종을 출시했고, 미국 세포라 입점 등 해외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웅제약 계열사 디엔코스메틱스는 EGF(표피세포 성장인자) 기반 브랜드 '이지듀'로 미국 아마존 등 해외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바이오의약품 연구 기술을 화장품에 접목한 사례다.
이 밖에 한미사이언스는 신규 브랜드 '아데시'와 약국 전용 화장품 '프로-캄'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고, 유한양행도 새 브랜드를 내놓으며 화장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있다.
이들 제약사의 공통점은 의약품에서 쌓은 연구 역량과 신뢰도를 활용하면서도, 병·의원과 약국 중심의 기존 영업망을 넘어 온라인몰, 헬스앤뷰티(H&B) 매장, 해외 유통망으로 판매 채널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 더마코스메틱 시장, 일반 화장품보다 7배 빠르게 성장
제약사들이 화장품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더마코스메틱 시장의 빠른 성장세다.
국내 더마 스킨케어 시장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5.7%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일반 스킨케어 시장 성장률(2.1%)보다 7배 이상 높다.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조 5557억 원으로 추정되며, 전체 스킨케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9.0%에서 지난해 17.1%로 거의 두 배가 됐다.
글로벌 더마코스메틱 시장 역시 지난해 약 480억 달러에서 올해 53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두 갈래 진출 전략: '원료·소재'와 '브랜드·유통'
제약·바이오 기업이 화장품 시장에 들어가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원료·소재 분야다.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얻은 성분 연구와 제형 기술을 화장품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최근에는 PDRN, PN, EGF 등 피부 재생 관련 바이오 소재를 활용한 제품이 늘고 있다. 동국제약 센텔리안24는 마데카솔의 병풀 추출물 기술을, 대웅제약 이지듀는 EGF 연구 기술을 활용했다. 파마리서치는 재생의학·의료기기 분야의 PDRN·PN 기술을 '리쥬란 코스메틱'에 적용했고, 동화약품은 상처치료제 '후시딘'의 인지도를 살린 '후시다인'을 선보였다. 동아제약도 피부 관련 의약품 자산을 바탕으로 파티온을 키우고 있다.
둘째는 브랜드·유통 분야다. 제약사의 의학적 전문성과 소비자 신뢰를 앞세워, 병·의원과 약국 중심이던 판매 기반을 올리브영 같은 H&B 매장, 온라인몰, 해외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파마리서치의 리쥬란은 의료 시술에서 얻은 인지도를 홈케어 화장품으로 넓힌 대표 사례로, 외국인 구매 비중이 절반을 넘고 2년 연속 올리브영 연매출 100억 원 이상 브랜드에 올랐다.
■ 관건은 '기술력을 매출로 연결할 수 있느냐'
업계에서는 제약사들의 화장품 사업 확대를 의약품 시장의 성장 한계를 보완하고 새 수익원을 찾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연구 기술과 브랜드 신뢰도를 실제 소비자 구매와 해외 매출로 이어갈 수 있느냐가 앞으로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