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치료제 ‘100일 신속등재' 첫 관문… 11월 4일 대상 약제 선정
11월 4일 선정심의위원회… 발표와 심의 '원데이' 진행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의 첫 대상 약제가 이번 주 가려진다.
보건복지부는 11월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제전자센터에서 신속등재 시범사업 선정심의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위원회는 보안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되며, 신청 제약사들이 차례로 대면 발표를 한 뒤 같은 날 심의까지 마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심사위원 일정을 고려해 발표와 심의를 하루에 몰아 진행하는 것이다.
시범사업에는 13개 제약사가 14개 약제를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최종 심의 대상에 오른 것은 10개 제약사의 11개 약제다. 복지부는 대체약제 유무, 질환의 중증도, 건강보험 재정 영향, 환자의 안정적 치료 보장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5개 안팎의 약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심의 결과는 내부 보고를 거쳐 확정된 뒤 해당 제약사에 개별 통보된다.
다국적사부터 국내사까지… 심의 대상 11개 약제는
심의 대상에는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이 대거 포함됐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치료제 '보이데야정'(다니코판)과 전신홍반루푸스 치료제 '사프넬로주'(아니프롤루맙) 등 2개 품목을 올려 유일하게 복수 약제로 심의를 받는다.
한국MSD는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윈레브에어주'(소타터셉트), 한국BMS제약은 베타지중해빈혈 및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치료제 '레블로질주'(루스파터셉트), CSL코리아는 B형 혈우병 유전자치료제 '헴제닉스주'(에트라나코진 데자파르보벡)의 신속등재를 추진한다.
이 밖에 바이오젠코리아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치료제 '칼소디주'(토퍼센), 레오파마의 전신 농포성 건선 치료제 '스페비고주'(스페솔리맙), 입센코리아의 원발성 담즙성 담관염 치료제 '아이커보정'(엘라피브라노르), 넥세라파마코리아의 뒤센 근이영양증 치료제 '아감리현탁액'(바모롤론), 베르토코리아의 활성화 PI3K 델타 증후군 치료제 '조엔자정'(레니올리십)도 심의 대상에 올랐다. 국내 제약사로는 광동제약이 레버 유전성 시신경병증 치료제 '락손정'(이데베논)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240일→100일… '선등재·후평가' 방식 도입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은 등재 절차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기존에는 급여 등재 전 비용효과성 평가와 약가협상을 모두 거쳐야 해 최대 240일가량이 소요됐지만,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 이를 최대 100일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등재 전에 실시하던 비용효과성 평가를 등재 후 실제 임상 성과를 바탕으로 한 사후평가로 바꿨다. 약가와 약제비 총액에 대한 협상 역시 사전에 정한 계약 조건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대체한다. 환자 수가 적고 장기적인 치료 효과를 단기간에 입증하기 어려운 희귀질환 치료제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약가는 A8 국가(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조정 최저가의 90% 수준에서 정해지며, 예상 청구액 협상도 생략된다. 대신 등재 이후에는 실사용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실제 임상 데이터(RWE)를 축적하고, 등재 5년 시점에 평가 결과에 따라 급여 유지, 약가 인하 또는 전액 본인부담 전환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신속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대신 사후 책임을 강화한 구조다.
이 시범사업은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 1단계 혁신방안'의 일환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했으며, 2026년 하반기 시행이 예고됐다.
'허가-평가-협상' 한계 보완… 윈레브에어 '트랙 전환' 주목
정부는 앞서 2023년 10월부터 식약처 허가, 심평원 급여평가, 건보공단 약가협상을 병행하는 '허가-평가-협상 연계 시범사업'을 운영해 왔다. 기존 330일가량 걸리던 등재 기간을 150일로 줄이겠다는 취지였지만, 평가와 협상 기준 자체는 일반 약제와 동일하게 적용돼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1차 시범사업 대상이었던 신경모세포종 치료제 '콰지바'가 한때 비급여 결정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신속등재 시범사업으로 '트랙'을 갈아탄 약제도 있다.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윈레브에어는 2024년 12월 허가-평가-협상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고 2025년 7월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한국MSD는 기존 시범사업 절차를 취하하고 지난 8월 31일 신속등재 시범사업에 새로 신청했다. 앞서 관련 학회와 환자단체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신속등재 시범사업으로의 전환을 공식 요청한 바 있다.
항암제 확대 요구·인력 확충은 과제
첫 시범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환자단체 분석에 따르면 2021~2025년 건강보험에 등재된 항암제 32개 품목은 식약처 허가부터 급여 적용까지 평균 659일이 걸렸다. 단계별로는 허가 후 제약사 급여 신청까지 191일, 암질환심의위원회 통과까지 156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 통과까지 201일이 소요됐다. 환자단체는 희귀질환에 이어 항암제에도 신속등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제도를 운영할 전문 인력 확보도 과제로 꼽힌다. 현재 심평원의 약제관리 관련 5개 부서 정원은 121명, 건보공단의 약제관리 관련 4개 부서 정원은 59명 수준이며, 휴직 등으로 실제 근무 인원은 정원보다 8~18%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등재와 사후평가라는 새로운 업무가 더해지는 만큼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존 신약 평가와 협상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는 이번 첫 선정 결과가 향후 신속등재 제도의 확대 여부와 운영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정 기준의 공정성과 사후평가의 예측 가능성이 확보될 경우,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한층 개선될 전망이다.